[여적] 공대 기자실
대학에 입학하던 1980년대 후반 서울대에서 가장 가기 힘든 학과는 이름도 생소한 공대 제어계측학과였다. 천재들만 간다는 물리학과와 함께 늘 입시학원 배치표의 최상단을 차지했다. 성적에 따른 서열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양상은 달랐다. 의대 역시 최상위권 ‘빅4’ 중 하나였지만 광풍은커녕 쏠림조차 없었다. 대입학력고사 시절인 1982~1993년 수석 17명(공동수석 포함)을 보면 물리학과가 5명으로 가장 많고 공대·법대가 각 4명, 의대는 1명에 불과했다. 공학도를 꿈꾸는 젊음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1970년대 산업 발전과 함께 최고 인재들이 몰린 ‘공학의 시대’가 2000년대 이후 한국 경제 도약에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서울대 공대에 지난달 31일 ‘독자’적인 기자실이 생겼다. 단과대 차원 기자실은 서울대에선 처음이고 국내를 봐도 이례적이다. 인공지능(AI) 쇼크와 반도체 열풍으로 대중의 주목이 높아진 상황에서 공학의 성과를 사회에 직접 전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공학 시대의 재래(再來)에 대한 기대가 담긴 것이다. 김성재 공대 대외협력위원장은 “공학 자체의 인기가 높아져야 한다. 인재가 공대로 유입되는 게 국가 산업 발전에도 중요하다”고 했다.
가능성이 없지 않다. ‘AI 시대’라는 패러다임적 대전환은 우리 사회가 다시 공학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 서울대 공대 방문이나, 한보형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삼성전자 상근직 겸임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의대 지상주의’에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는 듯 보인다. 이런 대전환이 공학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한 분야 학문의 발전만으로 큰 성취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은 이론물리학의 추상성에 공학자들의 구상적 설계가 합작해 이룰 수 있었다. 학문의 발전은 다양성과 통섭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한국 기초과학의 현실은 대학원생들이 미래를 걱정해야 할 만큼 열악하다. 공대 기자실이 자리한 39동은 주위에 자연대·약대·농생대 등 이공계 단과대가 몰린 곳이라고 한다. 대전환의 상징적 공간이 공학만 아니라 학문 세계 전반의 르네상스로 가는 출발점은 될 수 없을까.